리듬겜 하다가 처음 본 곡이 커버 디자인이랑 멜로디가 심히 괜찮길래 원곡을 찾아들었다.
https://youtu.be/DySBODRQEuw?feature=shared
이건데.. 아다치 레이의 '열이상(熱異常)'이다.
막연히 좋다는 느낌으로 들었는데 가사 찾아보고 기절할 뻔 했다. 너무 취향이라서....
세계의 종말, 디스토피아, 쇠맛, 모래맛, 온도이상, 녹음된 테이프, 핵폭발 이런 키워드 환장하는 나한텐 끝내줬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이버펑크류의 디스토피아는 취향이 아니다. 네온맛 싫어 쇠맛이 좋아.. 네온과 야광 스프레이와 갱이 난무하는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유행 속에서 이런 쇠맛 종말 분위기는 한줄기 빛이다.
어지러운 건반음 하며 어디 한 곳 지루한 구간이 없다. 훌륭하다.
그렇게 몇십번씩 반복해서 듣던 중에 무슨 보컬로이드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 봤는데 완전 초면이었다. 아다치 레이.
야마하나 인터넷사처럼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판매 중인 보컬로이드는 아니고 유저 제작 우타우로이드다.
테토처럼 유저가 본인 목소리로 녹음한건가 했는데 그런게 아니고 무려 정현파를 깎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게 무슨 소리인데? 하고 찾아보니
이런식으로 다른 보컬로이드 음의 주파수를 참고하여 비프음을 깎아서 하나하나 음성을 만든 것이다.
원본에 실제 사람이 조금도 들어가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결벽 마저 느껴진다.
비슷한 예로는 1960년대에 IBM사에서 만든 'Daisy Bell'이 있다. 특유의 섬뜩함이 좋다. 미디어에서 인공지능 로봇의 목소리가 실제 TTS 보다(10년전 기준으로도) 심하게 기계음 소리가 나는건 이 데이지 벨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소리다.
https://youtu.be/rT_zPhndef8?feature=shared
사실 레이는 어떤 하츠네 미쿠 팬의 '직립 보행이 가능한 미쿠 휴머노이드를 만들고 싶다' 는데서 시작한 제작 프로젝트의 프로토 타입이다. 미쿠는 보다시피 거대한 양갈래 머리 때문에 자립 보행을 하게 하는 것이 힘들었고(사실 양갈래가 없대도 힘든 일이긴 하다) 이에 따로 프로토 타입을 제작 했는데 그저 '미쿠 3호'로 두는 것이 가여웠는지 아다치 레이라는 디자인을 주게 되었다. 레이의 비교적 얌전한 복장은 휴머노이드의 관절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손가락 관절 하나 보여주지 않는 디자인에서 오는 매력이 큰 것 같다.
https://x.com/adachirei0/status/1586969506400067584
X(구 트위터) 계정도 있다. 제작자가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자체가 자동생성 되고 생성부터 업로드까지 레이 내부의 컴퓨터에서 이뤄진다. 즉 진짜로 레이가 쓴 글인 셈. 다시 말하지만 제작자의 결벽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왠지 나까지 두근거린다. 완전히 내 손으로 탄생 시킬 수 있는, 스스로 작동하고 말하는 개체라니 낭만적이지 않은가...